그래도 쇼는 계속된다 (무한도전 레슬링 특집) eYe

 

시작은 그랬다. 무한도전은 원래 '무모한 도전'이었고, 도니(정형돈은 그 시절에 이렇게 불렸다)는 첫 회 황소와 줄다리기를 하던 때부터 말했다. "근데 우리 이거 왜 하는 건가요?" 그 말마따나 그 도전에는 별다른 의미가 없었다. 목욕탕 배수구와 누가 누가 더 빨리 물을 빼내는가를 겨루는데에 거창한 의미가 있을 리 없다. 있다면 오직 그 무의미함에서 오는 바보짓을 서로서로 즐기자는 것뿐이었다. 도전이야 성공하면 좋고, 못하면 더 좋을 수도 있었다. 그러니 혹독한 훈련이라고 이름 붙이고, 실제로 혹독하게 훈련하지는 않았다. 왁자하게 농담을 주고 받고, 가끔 뛰고 넘어지고, 그래서 프로그램은 지금보다 훨씬 희극에 가까웠고, 그들은 진짜 코미디언 노릇을 했었다. 시청률은 한 자리에, 주변에 나처럼 열심히 챙겨보는 사람은 별로 없었지만, 나는 그 느슨함과 무의미함이 좋았다 

몇 번의 성공적인 탈바꿈과 함께 프로그램이 목표하는 도전의 크기는 눈덩이 불 듯 불어났다. 그리고 의미가 차곡차곡 그 안에 채워지기 시작했다. 도전하는 과정의 노고가 고스란히 카메라에 담기고, 눈물과 감동이 뒤따랐다. 전과 달리 도전의 성공과 실패가 중요해졌고, 혹독한 훈련이라는 이름은 없지만 실제로는 혹독하기 짝이 없는 훈련이 필요해졌다. 만드는 쪽이나 보는 쪽 모두의 역치가 계속 올라가 실제 도전에 나서는 자들이 바로 코미디언이라는 사실은 어느덧 잊혀졌다. 그러더니 드디어 도전은 신체를 위험수위까지 학대하는 프로레슬링까지 이어진다.

 좀 더 코믹한 레슬링이었으면 좋았을 것이다. 코미디언은 프로레슬러가 아니니 그렇게 무리하지 않아도 됐었다. 하지만 시청자는 그동안 보아온 것이 있고, 제작진 역시 그 눈을 겁낼 수 밖에 없다. 쇼는 늘 전진한다. 끌고 가는 차가 무거울수록 관성도 역시 커진다. 이미 코미디언의 영역을 벗어난 도전자들은 그 차가 이끄는 곳으로 끌려가야한다. 꽉 들어찬 관중에 멋들어진 연출이 있고, 거대한 무대가 있다. 아무도 그만하자고 말할 수가 없다. 싸이가 나와 연예인을 부르고, 피디는 그에 맞춰 아픈 도전자의 얼굴을 교차편집한다. 여기서는 스스로를 학대하면서 즐기는 묘한 피학성까지 엿보인다. 온갖 의미가 가득 들어차서 툭 건드리면 폭발할 것만 같다. 코미디언 도니가 아닌 어떤 초인이 경기장으로 입장하면서 카메라는 그의 등을 물끄러미 쳐다본다. 그 무거운 등에도 의미가 가득 들어 있다. 더 이상 느슨함도 무의미함도 없다. 도니는 여기서 대체 이걸 왜 하는 건가요 라고 웃으면서 물어서는 안 된다. 그저 아픔을 참고 묵묵히 걸어 들어가는 것이다. 쇼는 계속되어야 하니까. 더 크고 멋지게.

 더 이상 무모한 도전은 없을 것이다. 그래서 그립다. 이 훈련은 대체 왜 하는 건가요? 물으니 아무것도 안 하는 것보다는 나으니까, 라는 대답이 돌아오던 시절이. 코미디언과 코미디가 있던 때가. 한 없이 가벼웠던 때가. 무의미와 느슨함이. 실패해도 함께 낄낄 웃을 수 있었던 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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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글

  • 미오 2010/09/05 09:08 # 답글

    저도..가끔은 예전의 무한도전스타일이 그립더군요..자잘한 특집으로 개그에 충실했던 그때가..뭐 지금 스타일도 나쁜건 아니지만, 그래도 가끔은 예전이 그리워요
  • P1uto 2010/09/05 10:37 # 답글

    지금 이글루엔
    몇몇 분위기 파악 못하는 종자들이
    이거 왜하는 건가요? 하고 있습죠.
  • Dreamer 2010/09/05 19:30 # 답글

    인생과 마찬가지로, 생각없이 살다가 어느덧 세상의 사물에 의미를 부여하게 되는 이치와 비슷한 것 아닌가요
  • hotdol 2010/09/05 20:29 # 답글

    그러고보니 언젠가부터 실패가 없어졌네요.
  • 쑥대밭 2010/09/05 21:09 # 답글

    정말... 춘향이특집이나 다찌지리와리남매 같은게 필요합니다
  • 닭고기 2010/09/05 21:37 # 답글

    팬도 아니지만, 어느 순간부터 무도의 어깨가 무거워졌다는걸 무려 오늘 재방송을 보고 새삼 느꼈습니다.
  • 공감합니다. 2010/09/05 21:59 # 삭제 답글

    그리고 어쩌다 사람들이 예능 방송 프로그램에서 "진실함"을 찾아야만 하게 됐는지 한숨도 납니다.
    개인적인 취향이지만 예능은 좀 느슨하고 편했으면 좋겠어요.(폄하 아닙니다.)

    어느 한 부분에 2222를 붙이는 숫자놀음이라도 하고 싶지만 포기하고 글 전체에 강한 공감 날리고 갑니다.
  • 2010/09/05 23:44 # 삭제 답글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ㅇ.ㅇ 2010/09/05 23:49 # 삭제 답글


    프로레슬링을 익혀서 이명박을 척결하려는 겁니까?

    왜 그렇게 열심히 하지요? 민주주의 만세입니다.
  • 제도화 2010/09/05 23:57 # 답글

    와우 훌륭한 지적입니다
  • miliun 2010/09/06 00:03 # 삭제 답글

    좋은 지적입니다..
  • 아묘M 2010/09/06 00:17 # 답글

    좀더 재미를 추구했어도 좋았을텐데...
    토하는 정형돈씨의 모습이 어찌나 안타깝던지 ㅠㅠ
    고등학교 때 봤을땐 (무모한 도전 시절이죠) 기차랑 달리기 대결을 한다든지, 청소차와 맞서 빗자루질 대결을 하던 그 깨알같은 코미디가 전 더 맘편히 봤던거 같아요. 이번 레슬링편은 뭔가 보면서 마음만 불편 ㅠㅠ
  • ddd 2010/09/06 00:50 # 삭제 답글

    태호 피디도 앞으로는 장기 프로젝트 안 한다고 인터뷰 하더라구요. (레슬링에서 그렇게 데었는데 또 한다면 그게 더 이상할지도 ㄷㄷㄷ) 레슬링이 감동인 걸 떠나서 불편했던 것도 사실. 앞으로는 멤버들이 무리하지 않도록 깨알같은 에피소드로 갔으면 좋겠네요. (물론 그러면 무한도전, 매너리즘에 빠졌나 라고 기자들은 비난하겠지만.)
  • THERAPY 2010/09/06 01:03 # 답글

    무모한 도전때부터 놓치지 않고 본 애청자지만..
    솔직히 작년의 여드름 브레이크부터 '아.. 이제 예전같은 기분으로 무한도전을 못 보겠구나' 했었지요.

    프로레슬링을 봅슬레이나 에어로빅과 비교하며 그때랑 다른게 무엇이냐 하시는 분들도 보았습니다.
    매우 다릅니다. 프로그램의 무게가 달라졌습니다.
    이번 레슬링 특집을 보고 있노라면 봅슬레이는 F1 특집마냥 그냥 설렁설렁 넘어가는 듯한 기분입니다.
    하지만 당시 봅슬레이도 제작진 출연진 모두 고생하며 찍은 특집이었죠.

    예능의 공익화, 예능에 진짜 목숨을 걸 정도의 열정과 진지함..
    저도 무한도전을 정말 좋아하는 사람이고 위 두 모티프에 대하여 많은 공감을 하고 있습니다만,
    어느 시점에서부터인가 -저는 그 시작이 역시 여드름 브레이크라고 생각합니다-
    김태호PD는 시청자에게 너무 많은 부담을 지우는 거 같습니다.
    이번 프로레슬링 특집은 확실히 그 부담을 표면화시켜주는 계기가 아닐가 싶네요.

    그냥 돈을 갖고 튀어라 같은 레전드를 뻥뻥 찍어내기에는 프로그램 자체도 오래되었다 싶기도 하고..
    어쩌면 최고로 빛나는 이 시점에서 계속 부담을 안고 스스로 사지로 걸어나가는 것보다 그냥 종방해버리는 것도 괜찮지 않을까 싶을 정도입니다. 일밤 같은 포털형 예능을 제외하면 참 오래도 했죠.
  • actor 2010/09/06 03:37 # 삭제

    무슨 소리를 하는겁니까?? 김태호PD는 시청자에가 너무 많은 부담을 지우는거 같다고요?? ㅋㅋㅋㅋㅋㅋㅋ

    PD 가 시청자에게??? 이거 개그같은데 웃기지가 않네요
  • 2010/09/06 12:17 #

    반대죠. 시청자가 PD에게 부담을 지우는 겁니다.
    그놈의 리얼은 진담 리얼이어야 한다는 논리로 말이죠.
  • 콧물 2010/09/06 01:25 # 삭제 답글

    요즘 무한도전을 보고 느꼈던 불편함을 적절히 설명해 주시는군요.. 정말 그 무의미함과 느슨함이 좋았는데. 다시 어깨에 힘을 뺐으면 좋겠습니다..
  • 히스기야 2010/09/06 02:54 # 답글

    저는 처음부터 보지 않아서 그런 기분은 잘 모르겠지만, 지금도 지금 나름대로 괜찮은거 같아요. 요즘 들어 보기 드문 예능프로그램이라 생각합니다. 확실히 이번 프로레슬링 편은 예능이라기보단 다큐 한편을 보는 기분이었긴 했죠...
  • 지네 2010/09/06 03:27 # 답글

    퀸의 'The show must go on'이 생각나는군요. 이번 레슬링 특집을 잘 편집하면 하나의 뮤직비디오가 될 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 김코믹 2010/09/06 04:48 # 삭제 답글

    공감합니다.

    동호회 수준에서 시작한 WM7, 도서지역 초등학교 가을 운동회에서 애들과 놀아주려고 시작한
    레스링인데 판이 너무 커지니까 그 이상을 보여줘야 하는 사명이 부여됐습니다.
    그런 사명 때문에 연기자들은 혹사되고, 위험을 감수한 투혼이 필요하게 되고 말입니다.

    대한민국 평균 이하임을 자처하던 그 시절,
    연탄산에서 연탄을 구하고 싸움소와 줄다리기를 하며 지하철과 이어 달리기를 하는
    사명감이라곤 단 십 원어치도 없는 허접스런 그들의 도전에 마음 편히 웃고 싶네요.
  • 1111 2010/09/06 07:14 # 삭제 답글

    무모한 도전 무한한 도전등 다들 황소끌고 돈전 분류하던 때가 좋다 라고 하시지만.
    당시 무도는 폐지를 눈앞에 두고 왔다리 갔다리 하던 수준이었습니다. -_-;;
    더블어 그당시 아이템은 왜 이런걸 하냐고 평론가나 사람들 한테도 대차게 까일때였고요.
    순수함이나 편안함이 좋다고 말하는건 좋지만 예시가 그때의 무도라면 적절해 보이지 않아요.

    그리고 단순히 불가능에 도전(소끌고 , 지하철이랑 경주하고, 동전 분류하고, 청소차랑 경쟁하던)그 당시 무모한 도전, 무리한 도전 이후 '아하'를 시작으로 무한도전의 도전아이템은 불가능에 도전에 아니라 가능할수도 있는 그렇지만 실패의 확율이 있는 도전으로 그 콘셉트가 바뀌었습니다. 오래 무도를 봐오셧다는 분들이 왜 다 그런 부분은 생각않하시는지.

    그리고 다찌리지편이라던가. 몇몇레전드라 불리는 방송분량외에는 사실 않보는 사람이 태반이었고.
    평상시에 레전드 아닌 편에는 관심도 없던 사람들이 이번에 무슨 물만났다는 듯이 순수함을 논하면서 까대는거 보면 솔직히 기분 묘하네요.

    까는 방향이 이번편의 최고문제점으로 흔히들 말하는 안전성의 문제라면야 당연히 까임받아 마땅하지만.
    무한도전의 도전방향이라던가 성격쪽에서 편한 도전을 바라는건 정말 이율배반입니다.
    하다못해 그게 팬의 입장에서 하는 비판이라면 더욱 그렇고요
  • nibs17 2010/09/06 18:00 #

    게다가 '대한민국 평균이하 남자들의 도전'이라는 컨셉자체가, 대한민국 평균남자는
    올려다보지도 못할 정도로 성장해버린 멤버만큼 프로그램 자체도 성장해버렸죠.
    거기에 '시청자의 눈'도 프로그램이 성장한 것에, 세배정도는 높아졌구요.

    그런 부분은 간과하고, 자기들 보기 조금 부담스러웠다고 프로그램을 퇴화시키자는
    의견을 보고 있으면, 정말 그 당시를 제대로 기억하고 있는건지 의심스럽더군요.

  • 남극탐험 2010/09/06 10:54 # 답글

    마지막 문단이 크게 와닿네요...잘 읽고 갑니다.
  • 동네 최씨 2010/09/06 12:57 # 답글

    프로레슬링이라는 주제 자체가 어느 한 쪽에 중심을 두기도, 줄타기 하기도 힘든 테마였던건 확실합니다.
  • HolyRan 2010/09/06 15:34 # 답글

    너무 슬프잖아요.
  • 바시 2010/09/06 18:18 # 답글

    무한도전은 사실 따지고보면은 똘끼로 무장한 프로그램이었죠. 그 기차랑 속도 싸움 하는 거 부터 해서 정말 왠지 모를 똘끼가 있었는데 지금은 그런 것도 없는 듯.
  • 냠냠냠 2010/09/07 00:16 # 삭제 답글

    무도 맴버들의 연령대가 점점 높아져가고 있죠.

    그리고 무한도전의 판도 점점 커져가고 있습니다.

    예전 추억에 빠지는 것도 지금 잘되었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지금 와서 예전 모습으로 회귀한다면 그건 더 문제가 있을 것입니다.


    고전게임이 재미있었다고 요즘 나오는 게임을 옛날 게임처럼 만들 수는 없는 것 아닐까요?
  • 레일트레이서 2010/09/07 00:26 # 답글

    그래도 1박 2일보단 낫다. 무도짱
  • ajdajd 2010/09/07 01:18 # 삭제 답글

    이번 레슬링 특집이 무한도전의 색을 대표하는 것은 아니지 않나요? 게다가 어찌어찌 하다보니 판이 커진 감도 있고.. 근데 많은 분들이 간과하고 계시는데 무도는 많이 성장하고 굵직한 도전을 하고 있긴 하지만 세븐특집이나 죄와길, 바캉스, 소원을 말해봐, 세계여행처럼 헐렁하고 의미없는 깨알같은 재미추구도 계속 하고 있습니다. 알래스카나 번지 특집처럼 구성자체가 망한적도 있고.. 가끔 이렇게 굵직한 프로젝트를 하는 건데 거기에 굳이 태클걸 필요가 있나 싶네요..
  • 페퍼 2010/09/07 01:19 # 답글

    사실 무한도전에서 언제부턴가 사용하지 않은 말이있죠
    대한민국 평균이하, 리얼버라이어티
    어느덧 대한민국 평균 이상이 되어있고
    리얼버라이어티가 아닌 다큐와같은 묵직한 의도가 들어가고있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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