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학적이거나, 혹은 미술적인 (Inception) eYe

오랜만의 감상문

 


1. 미술적인, 그래서 끊어지지 않는


영화의 욕심은 스토리의 특출남이나 플롯의 정교함에 있지 않다. 이 영화는 말하자면 에셔의 그림을 어떻게 '영화적'으로 구현하는가에 온통 신경을 쓰고 있어서, 그런 의미에서 매우 미술적이다. 에셔의 관심이 불가능한 시공간을 판화로 구현하는 것에 있었듯, 인셉션은 내용 안에서 두 번이나 의미심장하게 드러나는 '펜로즈의 삼각형'을 그 내부에서만이 아니라, 영화전체로 확장하기를 원한다.

영화의 시작과 마지막 절정 부분이 사이토와 마주한 코브로 이어지는 것은 이 구조에서 결정적으로 중요하다. 여러 개의 층위로 이루어진 이 계단식 영화에서 이 원환구조는 계속해서 걸어올라가는 것처럼 (아니면 내려가는 것으로) 느끼던 관객을 한 순간에 바닥으로 끌여내려서(혹은 상승시켜서), 추락의 느낌을(혹은 부유의 느낌을) 맛보게 한다. 그리고 결말. 과연 코브의 토템은 멈출 것인가, 아니면 계속해서 회전할 것인가에 관객의 관심이 온통 쏠리지만, 이 구조에서는 그 어떤 것도 선택이 불가능하다. 토템이 멈추거나 회전하거나, 펜로즈의 삼각형은 그 지점에서 끊어져 영화가 그저 '가능한' 이야기에서 멈추기 때문이다. 인셉션은 매우 영화적인 방식으로, 그러니까 편집과 컷으로 불가능성을 만들고, 그래서 여러가지의 해석으로 열려 버린다. 어느 지점을 선택해서 삼각형을 끊어도 해석자 스스로에게는 만족할 만한 답이 만들어질 가능성을 품고 있다는 뜻에서.


2. 수학적인, 그래서 모순적인


영화의 설정은 매우 수학적이다. 꿈은 단계로 구분되고, 따라서 그 안의 시간도 엄격하게 내적인 논리로 움직인다. 영화 속의 인간들은 사실 실제의 사람이라기보다는 사이보그나 로봇에 가깝다. 그들의 내면은 여러 개의 층(Layer)으로 구분이 되어 있고, 각 층에서 밑으로 내려가다 보면 무의식이라고 설정된 공간과 만나게 된다. 말하자면 영화는 한 로봇의 메인 프로세서에 다른 프로그램을 심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다른 로봇들의 이야기라고 보아도 큰 무리가 없다. 그러나 실제로 우리가 감각하는 꿈이 여러 개의 층위로 분리되기는 하지만, 정확히 설정과 동일하게 움직일 리 없으므로, 관객의 입장에서는 실재와 가상(영화)이 어딘가 어긋난다는 느낌을 받게 된다. 그래서 구멍이 생기고, 이로 인해 영화 자체가 꿈과 닮아 버린다. 즉 영화에(꿈에) 정신없이 재미있게 몰입하다가, 끝나고(깨어나서) 문득 생각해보니 이곳저곳 모순점과 의문이 고개를 드는 것이다. 인셉션은 영화로 꿈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는 동시에, 영화 관람이라는 행위 자체가 (즉 영화라는 형식이) 꿈꾸는 것과 닮았다는 점까지 지적한다는 점에서도, 재귀적인 영화다. (스텝롤이 올라간 다음에 '후회하지 않아'가 등장하는 것은 우연이 아니다) 그러니까, 손가락으로 자기 자신을 가리키고 있는 것이다. 이 구조는 영화의 내부와 조응한다. 따라서 어떤 모순이든 영화에서 모순을 느꼈다면 그것도 우연이 아니다. 수학에서 재귀는 금기다. 재귀적인 순환이 일어나는 순간 패러독스가 생기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거짓말장이의 역설이나, 러셀의 역설)


3. 비극적인, 그래도 해피엔딩?


코브가 만약 임무를 성공적으로 완수하고 집으로 돌아가 현실을 되찾았다면, 이 이야기는 해피엔딩이다. 그러나 코브가 아직도 림보에 갇혀 있고, 이 모든 이야기가 아내를 죽게 만들었다는 죄의식을 극복하려고 코브 자신이 고안한 꿈에 불과하다고 해석한다면, 이야기는 더 없는 비극이다. 그런데 잠깐. 하지만 꿈꾸는 자가 그것이 꿈임을 자각하지 못하는 한 그가 비극을 비극으로 인지할 가능성은 사라진다. 그는 이제 깨지 않는 꿈속에서 행복하고, 그러므로 그에게는 이것도 해피엔딩이다. 코브는 어쨌든 집으로 돌아갔다. 꿈을 꾸고 있든, 깨어 있든 간에 그에게 그 진실이 달라지지는 않는다. 토템이 멈추는가 계속 도는가 (그런데 언제까지 돌아야 그것이 '계속' 돈다고 인식할 수 있을까?)에 대한 확실한 해답은 구경꾼의 간지러움을 긁어 줄 수는 있다. 우리는 그것으로 꿈인지 현실인지, 그 경계를 분명히 하고 싶어한다. 그러나 이야기 속의 주체에게는 더 이상 상관없는 문제다. 그러므로 그는 더 이상 기다리지 않고, 자신의 아이들에게 달려간다. 가상이면 뭐 어떤가. 드디어 아이들의 '얼굴'이 보이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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