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법의 파업뉴스 hEaRt


언어가 존재의 집이란 건 틀림없는 문장이다. 철학적인 혹은 정신과학적인 함의를 벗겨내고 매우 실용적인 태도로 접근해도, 그 말은 진실이다. 주어진 말이 우리를 만들고, 우리는 그 안에서 산다. 자유로운 생각은 없다. 말이 우리의 주인이고, 처음이고, 끝이다.

10년 전의 뉴스나, 지금이나 역사적으로 굳어버린 '말의 틀'은 전혀 바뀌지 않았다. 앵커는 파블로프의 개처럼 '파업'이라는 말이 나오면 '불편'을 연결시킨다. 파업이 나오면 '수출에 지장'을 연결시킨다. 파업이 나오면 '막대한 손해'를 연결시킨다. 이 명제에는 가치판단이 들어있지 않으며, 따라서 온전한 사실이다. 그러나 잠깐. 사실의 취사선택은 가치판단을 이미 전제한다. 파업이라는 사건을 핵심으로 하여 그 주변으로 뻗어 나오는 다른 사건을 연결시키는 것은, 완전한 가치판단의 작업이다. 그리고 이 작업에서 모든 뉴스생산자는 전혀 ‘사고’하지 않는다. 그들은 굳어진 말의 틀을 그대로 내면화하고, 그 틀을 의심하지 않으며, 그냥 개처럼 짖을 뿐이다. 그 개의 뒤에서, 가치중립적이라 지칭되는 보도행태는 서브-리미널 광고처럼 끊임없이 속삭인다. 사실을 사실 대로 말한 것이니 아무 문제가 없다는 그 뉴스들이, 사실 진정으로 전하는 메시지는 단 한 가지다. 파업은 '나쁜 것'이라는.

실질적인 주어가 없는 언어는 매우 강력한 마법적인 힘을 가진다. 주문은 시청자를 순식간에 여러 곳으로 호명해, 불러 세운다. '시민불편'의 주문을 외치면, 철도라고는 일 년에 추석과 설날, 단 두 번만 이용하는 사람도 시민불편 안으로 들어와, '시민'이 되어 걱정을 시작한다. '수출지장'을 외치면 그는 애국자 혹은 국가 그 자체가 되어 한탄한다. '막대한 손해'를 말하면, 마치 자신이 그 손해를 입은 사장님이라도 된 것처럼 어찌할 바를 모른다.

이 마법의 뉴스가 노리는 것은 사실 간단하다. 현상에 대한 판단 유보와, 사고의 정지. 일차원적인 정보전달, 그것도 매우 정치적인 함의를 담은 중립을 가장한 정보의 전달에 주력하는 뉴스는 그 자신이 갇혀 있는 말의 틀을 시청자에게 그대로 감염시키길 원한다. 노동자가 왜 파업을 하고 있는지, 그들이 주장하는 바가 무엇인지, 실제로 어떤 문제가 발생해 사측과 노조가 대립각을 세우는지, 사실 이성적인 뉴스생산자라면 단 3분이면 요약해서 ‘말’할 수 있겠지만, 그들은 그렇게 하지 않는다. 그것은 주어진 틀을 부수는 반역이고, 따라서 존재 자체가 깨져나가는 체험이기 때문에.

그리하여 오늘도 파업철회의 뉴스에는 ‘불편한 시민이자 위대한 한민족의 국가이며 심각한 손해를 입은 철도공사의 사장님’이시기도 한 네티즌의 주옥같은 댓글들이 달린다. 노조위원장 당장 해고하고 철도공사 노동자 1000명을 잘라서 그 돈으로 청년실업을 해결하자는 MB식 아이디어부터, 이념을 집어치우고 나라를 생각하라는 따끔한 애국자의 충고와, 배부른 일꾼은 그냥 쉬라는 조선시대 지주의 일갈까지. 사고가 멈춘 곳에는 끔찍한 언어의 잔해만 남아 이리저리 뒹굴어 다닌다.


덧글

  • 성원 2010/05/18 07:52 # 삭제 답글

    올 여름에는 책 안나오나요? 여름방학마다 한국 가는 친구들한테 오빠 소설 실린 책 사다달라고 해서 읽는 재미가 쏠쏠했는데. ㅎㅎ
  • 디오니 2010/06/01 02:53 #

    아이고 답글이 좀 늦었네. 아, 올 여름에는 안 나온다네. 지금 아기 돌보기에 여념이
    없어서 여유가 없어. 블로그도 못 돌보는 중. ㅎㅎ
  • 성원 2010/06/04 18:31 # 삭제 답글

    오오오오!!!!! 아기 생긴 줄 몰랐네요!!! 얼마나 됐어요? 백일은 됐나요?
  • 디오니 2010/06/24 18:39 #

    2월11일 생이니까 지금 4개월하고 12일 지났구나. 블로그에 사진 하나 올려볼게. 어찌나
    이쁜지. 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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