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정치적이길 원할수록 정치적이 되는 역설 hEaRt


모든 시스템은 정치의 결과이며, 반대로 모든 정치는 그 시스템의 결과이다. 그러므로 시스템 자체가 정치다. 그러나 헌재라는 시스템은 자신의 본질을 배반하며, 증류수처럼 투명해지길 원한다. 그것은 좁은 의미의 정치를, 즉 입법행위와 그 입법행위의 주관자들이 벌이는 게임을 자신과는 무관하며 철저하게 독립적인 별개의 행위로 받아들인다. 이 시스템의 무의식은 자신들의 이미지를 완벽하게 비정치적인, 법의 내적논리라는 연료로만 작동되는 기계로 정립하기를 원한다.

헌재가 그러거나 말거나, 하지만 비정치적이길 원할수록 정치적이 되는 역설은 개인에게든, 시스템에게든 예외를 두지 않는다. ‘정치적 중립’은 경제학이 이야기하는 완전경쟁시장처럼 하나의 환상에 불과하다. 상상할 수는 있으나 역사상 단 한 번도 존재한 적은 없는 것이다. 이 정치적 중립이라는 가면은 지배의 논리에서 탄생했고, 지배의 구조에 의해 지탱된다. 중립은 정치적, 경제적 소외에 대해 말하지 않고, 따라서 정의에 대해 눈을 감는다.

그 환상적인 마약에 취한 헌재는 오늘 말했다. 국회의원들의 권한이 침해된 부분은 인정한다, 그러나 권한이 침해된 상태에서 제정된 법률의 유, 무효 여부는 판단하지 않겠다. 말하자면 입법행위 자체에 개입하지 않음으로써, 좁은 의미의 정치와는 끝내 거리를 두겠다는 의미다. 입법부가 알아서 하라고 말하며, 다시 한 번 자신은 비정치적임을 선언함 셈이다. 조롱거리가 될 것임이 뻔한 논리의 파괴까지 감수하며, 이 시스템은 자신의 이미지를 사수하기 위해 고군분투한다.

그리하여 그 결과로, 헌재는 극도로 정치적인 결과를 산출했다. 제정절차에 위법성이 있더라도, 헌법은 엿이나 먹으라며 분탕질을 쳐도, 이미 제정된 법률의 효력에 대해서는 침묵한다는 선례를 만들었다. 삼권의 분립이 삼권이 서로를 외면하라는 의미가 아님에도, 끝내 말하기를 거부했다. 그 자신이 이미 정치라는 사실을 외면한, 자신을 소외시킨 결과가 이렇게 나타났다.


ps. 9인의 재판관 중 3인은 다음과 같이 무효확인청구에 인용의견을 냈다. 그리고 그들의 자백과 같이, 헌재는 사명을 포기했다.


이 사건 신문법안은 위원회의 심사를 거치지 아니하여 국회 본회의에서 질의․토론을 생략할 수 없음에도 불구하고 제안취지 설명이나 질의․토론 절차를 거치지 아니한 채 표결된 것이므로, 국회의 의결을 국민의 의사로 간주하는 대의효과를 부여하기 위한 실질적 요건을 갖추지 못한 것이다. 따라서 신문법안에 대한 국회의 의결은 국민의 의사로 간주될 수 없으므로 무효라고 봄이 상당하다.

더구나 이 사건 신문법안의 경우 질의․토론절차가 생략된 점 외에도, 표결과정이 극도로 무질서하게 진행되어 표결절차의 공정성, 표결결과의 진정성을 의심하지 않을 수 없는바, 위의 사유들은 중첩적으로 결합하여 중대한 무효사유를 구성한다.

이처럼 법률안에 대한 국회의 의결이 국회의원들의 심의‧표결권한을 침해한 경우, 그러한 권한침해행위를 제거하기 위하여는 권한침해행위들이 집약된 결과로 이루어진 가결선포행위의 무효를 확인하거나 취소하여야 한다. 가결선포행위의 심의·표결권한 침해를 확인하면서, 그 위헌성․위법성을 시정하는 문제는 국회의 자율에 맡기는 것은, 모든 국가작용이 헌법질서에 맞추어 행사되도록 통제하여야 하는 헌법재판소의 사명을 포기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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