굿바이 파라다이스 (by 강지영) hAnD


비밀과 거짓말, 경계의 존재들


<굿바이 파라다이스>를 읽는 것은 재미있고도 현기증 나는 경험이다. 이야기는 전형적인 장르의 법칙을 따라 흘러가나 싶다가, 돌연 방향을 바꿔 딴청을 한다. 무섭다가 우습고, 끔찍함에 눈살을 찌푸리다 어느새 애잔한 서글픔에 잠기게 된다. 이곳에는 기성품이 없다. 롤러코스터와 귀신의 집이 섞여 있고, 컬트전문 영화관에 들어선 느낌을 받았다가, 어느새 정신을 차려보면 조용한 도서관에서 진중한 책을 들고 있는 듯하다. 그러다 책을 덮으면 서서히 책 안에 주조된 이미지의 잔상들이 머릿속을 뒤덮는다. 잘 꾸며진 전시회를 관람했을 때처럼.


때문에 이야기들을 관통하는, 작가의 시선이 가닿은 지점을 찾기가 쉽지 않다. ‘죽음’과 ‘죽음의 욕망’이 눈에 띄지만, 실상 그것은 표피에 불과하거나, 미스터리나 호러 장르의 꼬리표를 달고 있는 이야기가 필연적으로 도달하게 되는 종착지일 가능성이 높다. 좀 더 내밀한 키워드는 비밀과 거짓말이다. 그리고 이 비밀과 거짓말에 의한 소통불능 상태에 있는 존재들이 소설의 그로테스크한 아름다움을 만든다.


‘그녀의 거짓말’에 등장하는 그녀는 존재가 거짓말이다. 그러므로 비밀이다. ‘안녕, 나디아’의 살인마는 존재가 비밀이다. 그의 비밀스러운 취미는 나디아의 거짓말에 의해 촉발된 것이다. ‘벌집에는 벌이 살지 않는다’의 희극은 벌집의 군상들이 모두 고만고만한 거짓을 가장하는 데서 나온다. ‘하나의 심장’에서는 동일한 몸에 속한 존재가 서로에게 비밀을 갖는다. ‘사향나무 로맨스’나 ‘시선’은 애초부터 인간의 모습을 한 어떤 다른 존재에 대한 이야기, 그래서 비밀을 지닌 의뭉스러운 거짓말이 된다. ‘캣 오 나인 테일즈’는 비밀의 공간을 다룬 이야기이고, 표제작인 ‘굿바이 파라다이스’가 가리키는 곳은 현실의 생이 거짓말 같이 흐물거리고 증발되는 지점이다.


이 비밀과 거짓말이 만들어내는 존재들은 언제나 어딘가의 경계에 서 있는, 그래서 불안하고 불안정한 군상들이다. 아니, 거꾸로 말할 수도 있겠다. 경계에 있기 때문에 그들은 비밀과 거짓말로 자신을 감추고, 드러내지 못한다. 그 경계의 존재들은 다양하다. 사실 이 모든 이야기들이 현란한 색채를 갖는 것은, 그 군상들의 색깔이 하나로 뭉뚱그려지지 않기 때문이다. 남과 여의 중간에 선 트랜스젠더, 죽음과 삶의 사이에 낀 자살자, 정상의 사회와 비정상의 내면에 낀 살인마, 나와 너의 구분이 아예 무의미해지는 샴쌍둥이, 시체와 인간의 중간 지점인 좀비를 비롯해, 심지어는 개와 인간, 나무와 인간의 경계도 나타난다. 동식물과 죽음, 몸과 성애를 아우르는, 말하자면 거의 모든 종류의 경계가 하나의 작품집 안에 오롯이 담겨 있는 것이다.


불안정한 존재들은 사라지기 쉽다. ‘굿바이 파라다이스’의 세계에서 비극이 일어나는 것은, 그러므로 그들의 원죄에 의한 것이다. 사라져야만 하니까 사라지고, 죽어야 하니까 죽는 것이다. 이야기가 때로 서글픈 아름다움을 보여주는 것은 이 사라짐의 미학에 기댄 바가 크다. 그들은 단단하고 정상적인 사회에서는 비밀과 거짓말에 불과하며, 보이지 않는 곳에서만 숨을 쉬고 있어야 하는 존재들이다. 작가가 담담하면서도 매혹적인 어조의 문장으로 길어 올린 이들은 그래서 서글프다. 심지어 살인마마저도 애처롭다.


극단의 상상을 조금 벗겨내고 그 내밀한 곳을 들여다보면, 결국 모든 이야기들은 우리, 인간을 향해 손가락을 뻗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어떤 사물이든 경계선을 확정해야 그 본모습이 보인다. 우리의 경계선을 뛰어난 입담으로 세밀하게 그려나간 첫 작품집에서 ‘무서운 신예’라는 고색창연한 단어를 증명해낸 작가가, 조금씩 엿보이는 소재주의의 함정을 벗어나 사람에 대한 좀 더 깊은 성찰을 보여주길 즐거운 마음으로 기다려본다. 첫 작품집에서 보여준 자신만의 색깔을 간직한 아름답고 재미있는 이야기는 물론이고.


덧글

댓글 입력 영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