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터드 카본 (by 리처드 K. 모건) hAnD


76년 영화 ‘차이나타운’의 마지막 대사는 하드보일드의 정서를 한 마디에 담아낸, 거의 시에 근접한 명구였다. “잊어버려, 제이크. 여긴 차이나타운이잖아. (Forget it, Jake. It's a Chinatown.)” 그 순간 차이나타운은 그저 지리적인 의미가 아니라, 부조리한 세계 자체를 나타내는 상징으로 확대되고, 죽을 고생을 한 사립탐정의 비애(悲哀)는 어느새 그런 세계에 내던져진 인간의 실존적인 고민으로까지 연결된다.

레이몬드 챈들러가 그의 주인공 필립 말로우를 묘사하며 말했듯, 하드보일드의 사립탐정은 숙명적으로 패배하는 자다. 물론 사건은 해결된다. 그러나 사건의 해결은 역설적으로 사립탐정(개인)의 무력(無力)과 인간적이고 선한 가치들이 권력과 돈으로 무너지는 세계의 뒷모습을 또렷하게 드러낸다. 진실은 그 뒷모습에 온전히 담겨있다. 처음에 눈에 띄었던 문제는 어떻게든 해결되었다. 아니면 봉합되었거나, 잊혀졌다. 하지만 그 문제의 뒤에 도사린 근본적인, 말하자면 구조적인 문제는 여전하다. 악당은 힘없는 자들을 찍어 누르고, 그 악당은 더 큰 악당에게 잡아먹힌다. 이곳에서 불쌍하게 죽은 여자의 복수를 해주었다고 해서, 저곳에서 또다시 이어질 죽음을 막을 수는 없다. 필립 말로우의 냉소적인 유머와 우수가, 단지 그의 성격 때문만은 아닌 것이다. 숙명적인 체념과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떤 가치들은 지켜져야 한다는 의지가 충돌할 때, 냉소와 우수가 발아하는 법이다.

필름 누아르와 하드보일드는, 요새는 이미 낡아버린 코드다. 정형화된 장르가 모두 그렇듯, 그것들 역시 분위기와 이미지, 캐릭터를 남기고 산화했다. 그 코드의 영향력이 범죄와 친화력을 갖는 모든 장르 곳곳에 산재해 있기는 하지만, 전통적인 의미에서의 하드보일드는 앞서 언급한 정서가 일반적으로 받아들여지는 현재에는 무력하다. 소설 ‘얼터드 카본’이 무척이나 뚝심 있게 보이는 것은 그런 고전적인 정서를 거의 가감없이 받아들였다는 점에서다. 리처드 K. 모건이 그려낸 이 SF는 그 외양이나, 수십 년을 뛰어넘는 시간적 간격에도 불구하고, 3, 40년대 하드보일드의 적자에 가깝다. 플롯의 형태는 물론이고, 코바치의 독백과 비유체계(게다가 유머까지!)는 시간성과 미래임을 드러내는 몇몇 표지들을 걷어내면 통째로 챈들러의 소설에 들어가 박히더라도 큰 위화감을 주지 않을 것이다(물론 챈들러의 것이 좀 더 사색적이지만). 예컨대, “악의는 없지만 가차 없고, 잔인하지만 항상 불친절한 것만은 아닌 표정. 그들에게 무엇을 기대할 수 있겠는가? 문명은 그들에게는 아무런 의미가 없다. 그들이 문명에 대해서 아는 것이라고는 실패와 먼지, 찌꺼기와 혐오와 경멸뿐이다.”(레이몬드 챈들러, 리틀 시스터) 라고 읊조리는 말로우와 “도시의 거리 풍경에는 공통점이 있다. 이제껏 내가 가 본 모든 세계의 밑바닥에는 동일한 패턴이 존재했다. 허영과 과시, 사는 사람과 파는 사람. 절걱거리는 정치 체제라는 기계 속으로 배어든 뒤 그 아래로 뚝뚝 떨어져 나오는 인간 행동 양식의 순수한 증류액처럼.” 이라고 중얼대는 코바치는, 거의 일란성 쌍둥이처럼 보일 정도다.

그리고, 그 때문에 코바치 역시 수십 년 전의 선배와 다를 바 없는 길을 걷는다. 요약하자면 그는, 죽을힘을 다해 패배한다. 형용묘사처럼 보이는 앞의 문장이 거의 소설 내의 진실에 가깝다. 부분적으로는 이겼지만, 결국 세계는 무심함으로 그 틈을 봉합할 것이다. 사건은 세계에 제법 큰 파장과 흔적을 남기고 종결되지만, 그 자신도 이렇게 말한다. “크리스틴, 변하는 건 아무 것도 없어.” 바바리코트의 깃을 세우고 어둠속으로 사라지는 탐정의 뒷모습과, 마지막으로 ‘다음 화면으로 넘어가’려는 코바치의 모습이 동일한, 씁쓸한 울림을 주는 것은 그 때문이다.

‘얼터드 카본’의 내면이 고전적 하드보일드 정서라면, 그 외면은 다른 의미에서 고전적이다. 소설은 로버트 셰클리의 ‘불사판매 주식회사’나 윌리엄 깁슨의 ‘뉴로맨서’, 그렉 이건의 ‘쿼런틴’, 영화 ‘매트릭스’등의 고전에서 가져오거나 발전적으로 변형시킨 SF적 설정으로 가득하다. 어느 때는 너무 넘쳐서 과잉으로 느껴질 정도로. 그 때문에 초반에 소설에 접근하기가 그렇게 만만치 않다는 약점이 생겼지만, 그러나 오래도록 고민한 흔적이 역력한 그 설정 자체에 파묻히는 우를 범하지는 않는다. 설정은 플롯과 결합하고, 기술적 가능성들은 이야기를 더욱 풍성하게 만드는 선에서 멈춰 있다. 만약 극단적으로 ‘디지털화된 의식’이라는 기술에만 집착했다면 소설은 그저 그런 SF에서 끝나버렸을 지도 모른다. 그러나 리처드 모건은 그 위험을 피해 장르의 혼성모방을 택했고, 결과는 성공적으로 보인다(하기야, 현대의 SF는 제 아무리 ‘하드’한 길을 가더라도 어느 정도의 혼성모방을 피할 수 없다. SF팬덤이 아니고서는 접근하기 힘들다는 ‘쿼런틴’의 화자도, 전직경찰인 사립탐정 아니던가). 거기다 펄프픽션에 근접하는 폭력과 섹스의 묘사도 그 안에서는 외따로 떨어져 있지 않다.

그런 점에서 얼터드 카본은 고전적이면서도 영악한 소설이다. 근간을 흐르는 정서는 낡았지만 변치 않는 힘을 가지고 있으며, 겉에 입힌 옷도 세련됐지만 안드로메다로 날아갈 정도의 우주적인 패션은 아니다. 큰 욕심을 부리지 않고 어느 선을 지킨다는 의미에서, 얼터드 카본은 멋진 장르소설이다. 과거의 고전들을 창조적으로 인용하면서도 혼성모방이 일으키는 화학작용도 고스란히 담아냈다. 데뷔작에서 모든 재능을 쏟아부은 것은 아닌가 하는 걱정과 함께, 진부한 표현이지만,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작가의 차기작을 기대하게 만드는, 힘찬 소설이다.


덧글

  • 성원 2008/10/08 08:34 # 삭제 답글

    드디어 인간실격을 공수해서 봤답니다. 한국공포소설단편집 3권과 한국 환상 문학 단편선도 같이 샀어요. 덕분에 한동안 너무 행복했답니다. 다 좋은데 인간실격 주인공이 너무 불쌍해요. T_T 다음엔 해피엔딩 좀 써봐요.
  • 디오니 2008/10/09 00:41 # 답글

    이야, 내 소설이 무려 미국 땅을 밟아볼 수 있게 됐구나. 정말 고마워~ ^^
    해피엔딩은 좀 무리고...음...실은 그 아저씨가 죽지 않고 2부가 이어지는 이야기를
    구상 중이니, 그건 어때? ㅋ
  • 성원 2008/10/09 03:04 # 삭제 답글

    오오오오오~~~~ 살아있다는 것 자체가 해피한거죠. 인생 뭐 별거 있나? ㅋㅋㅋ 좋은 소설 읽을 수 있다는 것도 해피해피~~~ 인간실격에 열광하는 독자들 많던데 그 독자들도 너무 반가워할 거 같아요~~~ 살려내라! 살려내라! 살려내라!
  • agencja copywritersk 2022/09/16 20:39 # 삭제 답글

    멋진, 나중을 위해 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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