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박살나게 될, 연인 (2) 실패한 텍스트의 행렬

 

법원으로부터 아내와 딸의 반경 300미터 이내 접근금지 명령을 받은 날에, 나는 미메시스를 구입했다. 합리적인 이유라면, 가사를 담당해줄 로봇이 필요했고, 집은 혼자 지내기에는 너무 넓다는 점이었고, 동시에, 그 이유는 모두 개소리였다. 미메시스의 가사기능은 형편없었고, 인공지능은 말벗이 되기에 턱없이 부족했다. 그래도 상관없었다. 처음부터 나는 그것을 실용적으로 쓸 생각은 없었으니까.

주문한 지 하루가 지나자 마야전자의 코디네이터가 커다란 상자가 담긴 자동카트와 함께 방문했다. 코디네이터는 상업용 미소를 날리며 휑한 거실을 둘러봤다. “집이 정말 좋군요. 혼자 사십니까?” 나는 시큰둥한 표정으로 대꾸했다. “상관없잖습니까?”

“아, 예. 그렇죠. 저랑은 상관없는 문제죠. 그리고 이제부턴 저희들의 미메시스와 함께 사시게 되는 거고.” 코디네이터는 자기 마음대로 소파에 앉은 뒤, 상자를 열었다. 상자 안에는 검은 금속상자와 휴대용 컴퓨터가 들어 있었다. 코디네이터는 손바닥만한 컴퓨터를 꺼내서 전원을 켰다. 그리고 복잡하게 엉킨 선을 정돈해서 차례대로 검은 금속상자와 컴퓨터에 꼽았다. 하얀 선 다섯 개가 금속상자에 연결됐다.

준비를 마치고 코디네이터는 나를 보며 미소 지었다.

“지금부터 세팅을 할 겁니다. 일단 성별부터 결정하죠. 남, 녀, 중성, 세 가지 타입이 있습니다.” “중성? 그런 것도 가능합니까?” “아, 그럼요. 사람 취향이란 건 한계가 없답니다.” 그는 의미심장한 눈빛을 보내며 대답을 기다렸다. “여자로 하죠.” “나이는?” “열여섯.” “아주 구체적이시군요. 좋습니다. 그럼 시간이 단축되죠.”

그는 빠르게 컴퓨터를 두드리며 설정을 입력했다. 이름은? 이혜원. 아내의 이름. 의사표현은? 말은 적을수록 좋다. 그러나 아예 벙어리가 되어서는 안 된다. 운동능력은? 평형감각만 제대로 작동할 정도. 학습능력은? 동작 모방. 그 외에 다른 건 필요 없다. 배울 것도 없을 테니까.

자질구레한 몇 가지 설정을 더 끝내고, 코디네이터는 자리에서 일어섰다.

“자, 끝났습니다. 데이터가 인스톨 될 때까지 삼십 분 정도 걸립니다. 얘가 일어서면 목소리를 들려주세요. 그럼 즉시 주인으로 인식합니다. 그 뒤론 모두 자동으로 작동될 테니 걱정 마시고요. 원래는 제가 끝까지 봐드려야 되는데, 들러야 될 집이 한 둘이 아니라서요.” 나는 묵묵히 고개만 끄덕였다. 검은 금속상자에서 윙윙 거리는 소음이 계속 흘러나왔다. 일종의, 산고일 것이다.

코디네이터는 문을 나서면서 또 상업적 미소를 날렸다. “AS기간은 1년이고요, 그 안에 문제가 생기면 당연히 무상으로 수리해 드립니다. 아, 애완 로봇이긴 하지만 고의적 손상의 경우에는 로봇관리법에 따라서 무상 수리에서 제외된다는 건 아시겠죠? 초기설정에 질리시면 저희 회사 홈페이지에 방문하셔서 설정을 바꾸셔도 됩니다. 바보가 아닌 다음에야 다 할 수 있을 만큼 인터페이스가 쉽답니다. 에, 또 그리고, 궁금하신 점이라든가, 그런 건 없으십니까?”

나는 아무 뜻도 없이 물었다. “이거, 잘 팔립니까?”

코디네이터는 하하, 이번에는 소리 내어 웃었다. 정말 재미있다는 표정이었다.

“선생님, 제가 보기에 사람은 딱 두 가지 타입으로 분류됩니다. 힘없는 것들을 부수고 싶어 하는 사람과, 돌봐주고 싶어 하는 사람. 저희 회사에는 다행스러운 일입니다만, 세상에는 전자가 훨씬 많답니다. 게다가, 저희 회사 제품은 아주 싸거든요.”

코디네이터는 웃음을 남겨두고 자동카트와 나란히 걸으며 떠났다. 나는 문을 닫고 거실로 돌아와 여전히 윙윙거리는 상자를 내려다봤다. 문득 도끼 같은 것으로 상자를 두 조각 내버리고 싶은 충동이 들었다. 나는 주방으로 가 물을 마시고, 어쩐지 웃음을 참을 수 없어 킥킥 거리며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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