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개의 달 (2012) : 3개의 시차(視差)에 대해 eYe


 


* 중요한 내용이 누설되는 부분은 하얗게 가렸습니다.

 

1. 호러의 시차

 

영화는 미스터리와 호러의 경계에 걸쳐있다. 호러의 시각으로 보면 서늘함과 오싹함이 담백하게 잘 버무려졌다고 긍정적으로 평가할 수도 있고, 공포영화인데 조금 더 놀라게, 조금 더 폭발적으로 연출할 수도 있지 않았을까, 아쉬움을 표할 수도 있다. 의도적인 깜짝쇼의 남발을 지양하고 있어 호러 특유의 겁주기를 싫어하는 관객도 충분히 즐길 수 있는 영화지만, 반대로 바로 그 맛을 보러 영화관에 온 관객들은 조금 심심하다고 느낄 수도 있다. 고어씬으로 활용이 가능해 보이는 장면들도 피와 살이 튀는 연출을 배제하고 조명이나 컷을 활용해 간접적으로 보여주는 탓에, 이곳에서도 마찬가지로 시차가 보일 수밖에 없다. 하나를 선택하면 다른 하나는 포기해야 한다. 두 곳 모두에 서 있을 수는 없다. 영화는 호러에 대한 일반적인 접근성을 높이는 길을 택했고, 그래서 이 장르에 익숙지 않은 관객들도 큰 심적 부담 없이 즐길 수 있게 만들어졌다. 대신 호러에서 테러로 넘어가는 큰 폭발력을 기대한 관객은 실망감을 느낄 가능성도 커졌다.

 

2. 미스터리의 시차

 

사건이 일어나고, 해결된다. 미스터리는 이 해결에 방점을 찍는다. 그것은 이성적으로, 논리적으로 풀 수 없는 사건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믿음 아래에서 움직인다. 때문에 어떻게 보면 미스터리와 호러 만큼 안 어울리는 조합도 없다. 미스터리는 자연 밖에는 아무 것도 없다고 생각하지만 호러는 초자연적인 무언가를 자꾸만 끌어들인다. 이 둘은 자꾸 충돌한다. 밀실에서 일어난 살인이 그저 원혼에 의한 것이었다는 결말의, 가상의 영화를 생각해보라. 얼마나 맥이 빠질까.

영화는 이 미스터리와 호러가 서로를 배척하지 않도록, 균형있게 섞어 놓았다. 원혼은 어째서 원혼이 되었는가, 링 바이러스는 왜 이런 식으로 퍼지고 있는가, 그 인과관계를 찾아가는 미스터리는 궁금증을 유발시키지만 답을 찾아내는 순간 작동하는 이성은 공포감을 희석시키기 마련이다. 그러나 이 영화는 미스터리의 해소에 의존하기는 하되, 그곳에 모든 것을 쏟아 붓는 구성을 피해간다.

인물들이 마주치는 최초의 미스터리는 '상황'이다. 이곳은 어디인가. 왜 내가 이곳에 와 있는가. 영화가 진행되고, 중반 이후에 이 질문은 '나는 누구인가'로 슬며시 바뀐다. 사실, 그 두 개의 질문은 영화 안에서 같은 대답을 이끌어내도록 구성되어 있기도 하다. 그리고 그 답은, 어느 순간 관객에게 적당히 내밀어져 있다.

이곳에서 다시 시차가 드러난다. 진부하다고도 할 수 있는 반전. 대신 소희의 캐릭터는 이 패턴에 색다른 맛을 부여한다. 영화의 반전은 소회 때문에 두 겹으로 작동하고, 그것으로 이번에는 영화라는 틀 바깥에서의 미스터리가 움직인다. 객관적으로, 이성적으로, 전체적으로 되짚어 보는, 순수하게 미스터리적인 상황이 영화가 끝나고 나서 이어지는 것이다.

 

3. 소희와 관객의, 기억의 시차

 

2의 마지막 문장에 이어서, 스텝 롤이 올라가면서 들리는 '보이스 오버''어떤' 관객들의 시점을 대변한다. 그런데 그것으로 모든 이야기가 종합되고, 곳곳에서 뿌려진 여러 복선들이 한꺼번에 수렴되지 않는다. 전지적 시점의 객관적인 관객은 군데군데 뚫린 서술상의 구멍들을 느끼게 된다.


 

별의 연주시차에 대한 이 그림을 전체적으로 구경하면 마치 '달이 두 개 뜬 것'과 같은 장면과 마주치게 된다. (당연히 그런 일은 우리에게 있을 수가 없다) 서술상의 구멍은 저 두 개의 별이 떨어진 시차만큼의 공간에 해당한다. '어떤' 관객은 E1의 위치에서 결말이 허무하다고 주장할 수 있다. (그래, 그냥 전부 귀신이었단 말이지?) 대신 다른 관객은 E2의 시점에서, 소희에게 밀착한 채 또 다른 길을 볼 수도 있다. (물론 이 길이 절대적일 이유도 없다, 또 다른 시점을 찾는 것은 이 영화에서 뽑아낼 수 있는 큰 재미 중 하나다)

영화의 메인카피는 '벗어나려면 기억해야 해'이다. 이 말은 석호와 인정에게 적용되는 것이기도 하지만, 특히나 소희에게 중요하다. 앞과 뒤가 붙어버린 결말 이후, E2의 시점에서 소희의 기억이라는 큰 줄기로 영화의 서술을 꿰어보자. 두 개의 달 중, 하나는 일상적인 흰 달이지만, 다른 하나는 붉다. 흰 달이 뜨는 동안의 소희는 방송과 제령이라는 임무를 성공적으로 수행하고 일상으로 귀환한, 자기기만적인 기억 속의 소희다. 붉은 달이 뜨는 동안의 소희는 이와 대칭적으로, 모든 것에 실패하고 결국 죽음을 맞은 실제의 소희다. 중반까지 흰 달이 지배하는 공간에서 소희는 착착 임무를 수행해가지만, 두 개의 달이 동시에 등장하면서부터는 이 기만적인 기억이 점점 후퇴하고, (상황을 전부 장악하고 있는 줄 알았던 그녀는 처음으로 여기에서 모른다고 말한다) 마지막에 가서 진실과 대면했을 때는 흰 달이 구름에 가려 온전히 붉은 달만 등장하게 된다. 이 소희의 시차는 당연히 모순적이다. 한쪽에는 기만적인 성공이, 다른 쪽에는 실제적인 파멸이 기다린다. 그러니 그에 대응해 일단 제령에 성공한 그녀 앞에 다시 나타나지 않아야 할 인물들이 나타나는 것도 당연하다. 이쪽의 시점을 채택할 경우 (다시 말하지만, 동시에 두 곳에 서 있을 수는 없다) 영화는 소희라는 인물의 자기기만이 파괴되어 가는 과정을 그린 내적인 심리스릴러로도 읽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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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우 파격적이라거나, 신선하다고 할 수는 없지만 두 개의 달은 매끈하게 뽑아낸 재미있는 공포영화다. 제 갈 길을 명확하게 알고 있고, 지나친 욕심은 부리지 않았다. 반대로 이 욕심의 부족이 영화의 단점이기도 하다. 애초에 좀 더 질척거리는 공포, 캐릭터들의 세세한 갈등에서 파생되는 섬뜩한 이야기와는 거리를 두고 있어, 그런 것을 기대했다면 아쉬울수도 있는 작품이다. 그러나 여태까지의 국산 공포영화와는 확실히 다른 맛을 지닌, 그저 흘려보내기에는 아까운 작품임에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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